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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신문] [사람이 희망이다]버섯농장 경영으로 연 300억원 매출 올린 농업인 박희주씨

글쓴이 관리자 작성일 2015-03-20 12:26:19 조회수 2834

[사람이 희망이다]버섯농장 경영으로 연 300억원 매출 올린 농업인 박희주씨

[내일신문]

“20년 동안 버섯농장 한우물 팠죠”

내일신문은 연중기획 ‘사람이 희망이다’를 연재하며 ‘사람’에게 희망을 찾으려 합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노력하는 우리 이웃과 동료를 만나 그들이 일구어가는 희망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지면 만들기에 독자 여러분도 동참하실 수 있습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희망을 가꾸는 이웃과 동료를 소개해주세요.(문의:내일신문 자치행정팀 02-2287-2266)

팽이버섯으로 수출 800만달러를 포함 연간 매출 300억원대를 올리는 박희주(55)씨는 ‘농업인’으로 불리길 원했다.

그는 1년 중 석달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다. 인터뷰 섭외를 했던 지난 4월에는 네덜란드 등 유럽에 장기 출장중이었다. 지난 11일에도 연락을 했지만 버섯농업협회 일로 서울에 하루 종일 머물렀다.

국내 기업형 팽이버섯 농장의 선구자로 꼽히는 그는 ‘글로벌 CEO’다. 그는 25년 이상을 버섯에 ‘올인’해 농장규모를 키웠다. 2005년부터는 기업의 사활을 걸고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화가 지망생에서 글로벌 농업인으로 변신 = 농업인 박희주씨가 버섯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83년 군대를 제대한 직후였다.

그는 고향인 청도군 이서면에서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대구의 한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했지만 화가라는 직업이 먹고 사는 생계수단으로서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농사를 하더라도 쌀농사와 같은 전통적인 방식은 싫었다. “농촌에는 살고 싶은데 아버지 세대처럼 전통농사방식을 고수하며 평생 가난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축산업을 해볼 계획이었죠.”

박씨는 새로운 농업아이템을 추진하기 위해 종자돈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택한 길이 중동행(?)이었다.

그는 중동 건설붐이 한창이던 시절 건설노무자로 5년정도 중동과 말레이시아에서 일했다.

그는 이 돈으로 버섯농장에 손을 댔다. 박씨는 버섯농사에 대해 ‘몸으로만 일하지 않고 머리를 써서 연구해야 하고, 땅이 많지 않아도 가능한 고소득 품목’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볏짚을 이용한 느타리버섯과 영지, 표고버섯을 주로 재배했다. 10여년 동안 버섯농사를 지어 쌀농사 수입의 몇배 를 올렸다.

그러나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는 느타리버섯 재배는 힘이 들었다.

“1980년대 초반 국내경기가 호황을 누리면서 인력구하기도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해 3D 업종은 그만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계화하지 않으면 농사도 힘들겠다고 생각해 품목을 바꾸기로 했죠.”

박씨는 1994년 ‘그린피스’라는 팽이버섯 농장을 설립했다. ‘그린피스(Green peace)’라는 농장이름은 ‘신선하고 안전한 친환경 식품’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정했다.

◆국내시장 포화, 해외시장 개척으로 돌파구 마련 = 국내시장의 호황에 힘입어 탄탄대로를 달리는 팽이버섯도 1998년 외환위기를 맞아 난관에 봉착한다.

원자재가는 폭등하고 국내버섯가격은 폭락해 위기를 맞았다. 당시로선 수출밖에 살 길이 없었다.

“국내경기 불황으로 팽이버섯 가격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시장을 두드렸습니다.”

박씨는 외환위기 직후 까다로운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수출전용 기업인 ‘그린합명회사’를 설립하고 수출전문인력도 영입했다. 팽이버섯 공장도 최첨단 자동화시설로 바꾸고 연구소도 만들었다.

팽이버섯이라는 다소 생소한 식품을 미국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과감한 투자였다.

그러나 미국시장은 녹록지 않았다. 공짜로 나눠주다 시피 판촉을 하며 미국인의 입맛을 유혹했으나 쉽지 않았다. 우선 미국 교민시장부터 공략했다.

수출시장을 뚫은지 3년만인 2001년 소량이나마 비행기에 수출용 버섯을 실을 수 있었다. 미국에 있는 2개의 대형 슈퍼마켓으로부터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 것. 미국시장이 뚫리고 나니 의외로 캐나다시장은 쉽게 개척됐다.

◆세계 버섯시장은 아직 무한정 = 박씨는 미주시장 개척에 자신감을 얻어 유럽과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 손을 댔다. 미주시장을 팽이버섯으로 공략했다면 유럽시장은 새송이버섯과 팽이버섯으로 양동작전을 폈다.

2005년엔 유럽시장 개척을 위해 40여톤의 버섯을 무료로 배부하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유럽시장에서도 2006년도부터 성과가 나타났다.

유럽시장에서만 390만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리는 등 박씨의 ‘그린피스’ 농장은 지난해에는 20여개국에 800만달러를 수출했다.

농장은 연간 매출도 250억원에 달하는 등 기업형으로 성장했다. 지난 2005년 30만달러 수출실적에 비하면 10배에 달하는 괄목할만한 성장이었다.

올해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고려해 수출 1000만 달러를 포함 약 300억원을 매출목표로 잡고 있다.

박씨는 “국내 팽이버섯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를 때까지 20년정도 걸렸는데 해외시장은 최소한 10년이상 개척할 여유가 많다”면서 “일본과 중국 대만 외에는 팽이버섯이 없어 해외시장은 국내 버섯농장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20여년을 한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버섯재배에 인생을 걸었다.

박씨는 “농업도 경쟁력을 잘 갖추면 수출과 함께 현지농장 건설 등을 통해 해외에서도 비교우위에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씨는 “농사를 지어도 잘 살수 있다는 희망을 농업인에게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청도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팽이버섯 최대집산지 ‘청도군’

전국생산량 40% 차지 … 기업형 버섯농장 수십개

경북 청도군은 팽이버섯의 전국 최대 집산지다. 전국 생산량의 40%정도를 생산한다.

청도군은 연간 2만315톤 이상의 팽이버섯을 생산하고 있다. 금액으로 따지면 1000억원이 넘는 소득을 농가에 안겨주고 있다.

청도군 팽이버섯 집산지는 1980년대 초반 대구시 달성군과 인접한 이서면 일대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현재 팔조리와 서원리 등에 수십개의 기업형 버섯농장이 들어서 있다.

그린피스 농장과 대흥농장 등이 대표적인 농장이다.

그린피스 농장은 7개 농장에서 하루 30여톤씩 생산하고 있다. 2만여평의 대형 재배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4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사진>.

안원덕 경북 청도군청 농정과장은 “고소득 품목인 팽이버섯 인공재배기술이 일본에서 도입되던 1980년대 초반에 청도군에서 재배되기 시작해 빠르게 확산됐다”며 “다른지역보다 빨리 선점한 것이 팽이버섯 집산지가 된 배경”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팽이버섯외에 새송시버섯, 황금송이, 만가닥버섯 등으로 생산 품목이 다양화되고 있다.

팽이버섯(Flammulina velutipes)은 전세계에 야생으로 분포하는 식용버섯이다. 팽나무 등 활엽수의 고사목에서 야생으로 발생한다는 데서 버섯이름이 유래됐다.

콩나물과 비슷한 모양으로 자라며 10∼12도의 저온에서 잘 생육한다.

팽이버섯은 1899년 일본에서 감나무원목을 이용해 자연기상조건하에서 인공재배되기 시작했으며 1945년부터 일본에서 상업생산됐다.

조우식 경북도 농업기술원 버섯연구 전문가는 “한국에 인공재배기술이 도입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라며 “팽이버섯은 항균, 항염증, 항종양, 항바이러스, 면역조절 효과 등을 가지고 있으며 비타민 B와 C가 풍부하다.”고 말했다.

청도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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